어... 이전 글들은 내 닉네임으로 검색하면 나오고
...방금 막 4화 글 쓰고 왔는데 새삼 또 할말도 없다 야
그냥 바로 올릴게. 즐감
아 맞아맞아 다음화에 여주 첫 조교 시작임
정원에서 나온 이후부터는 한동안 여러 방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별에 별 장비가 다 있는 운동용 방에, 남녀 구분 없이 혼욕만 있던 대욕탕. 왜 이렇게까지 하는건지 모를 정도로 커다란 도서관도 있었고 그 바로 근처에는 대조적으로 조그맣고 별 거 없는 공부방도 있었다. 간단하게 방의 용도나 주의할 점 등을 설명하고, 끝나면 바로 다음 안내할 방으로 이동하길 반복. 부엌이나 정원에서 비하면 굉장히 간결한 설명이었으나 슬슬 체력이 떨어져가는 나에게는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지금 내 눈 앞에는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하나.
"여기가 마지막이야."
그리 말하며 남자는 계단 아래로 저복저벅 걸어내려갔다. 나는 바로 따라가지 않고 잠깐 걸음을 멈춘채 계단 주변을 둘러봤다.
평범한 나무계단, 평범한 만듦새. 묘하게 구석진 곳에 위치했다는 점만 제외하면 별 특별할 구석 없는 계단이다. ⋯⋯분명히 그럴텐데 왠지 모르게 굉장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가 마지막이라는데, 하필 그게 지하라니. 대체 아래에는 뭐가 있을지⋯⋯. ⋯⋯어찌됐건 간에 안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도 남자를 따라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한 발짝, 두 발짝, 긴장감을 품은 채 천천히 내려갔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기분 탓일지 모르겠지만 소리도 사라져가는 듯 했다. 희미한 발소리만이 이곳의 유일한 소리였다.
그렇게 잠시동안 말없이 걸어내려가자 별일없이 지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둡다, 라는 것이 첫인상이였다. 광원이라고는 중간중간 놓여진 어슴프레한 조명들 뿐. 당장 보기에 구조 자체는 위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저 어둡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웠다. 숨을 내쉬는 것 하나도 신경써서 해야할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가 주변에 깔려있었다.
나와 남자는 그런 어두운 복도를 천천히 걸어나갔다.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대로라면 지하에 도착했을 때 뭐라뭐라 설명을 할 것도 같았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 말 없이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었다. 괜시리 불안했다.
복도에 있는 문들을 몇 개 정도 지나친 뒤 어느 한 문의 앞에서 남자는 멈춰섰다. 문을 열자 복도보다 약간 밝은 빛이 새어나왔다.
"들어와."
나는 긴장을 억누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어디선가 기묘하게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꽃향기 같기도 하고 고급 향수 같기도 했는데, 계속 맡고있으면 머리가 멍해지는 듯한 그런 냄새였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위기감이 들었다. 약품⋯⋯ 인걸까? 바보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굳이 지하까지 내려온 걸 생각하면 의외로 가능성은 높을지도 모른다. 위기감과 경계심에 다리가 굳었다.
"안 들어와?"
"아뇨⋯⋯."
물론 약품이든 아니든 내게 선택지는 없다. 제기랄. 일단 조금이라도 저항해보려는 마음에 숨을 최대한 얕게 들이쉬고는 있지만 이것도 크게 효과가 있을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각오를 다지고 방 안으로 발을 옮겼다.
방 내부는 상당히 간단했다. 가운데에 큰 침대, 그 옆 탁자와 그 위에 올려진 붉은색 양초 하나, 방 한쪽 구석에 비어있는 유리 수납장이 하나. 이게 다였다. 정말로 그것 외에는 뭐가 없었는데 대신에 침대가 매우 큰 것이 특징적이었다. 사람 서넛은 누울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지하실, 달콤한 냄새, 간소한 방에 큰 침대. 이 방이 무슨 용도인지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약간의 현실도피와 함께 나는 방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남자가 침대에 털썩 앉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 너도 슬슬 눈치챘겠지만 여기가 바로 대망의 조교실이야. 달리 말하자면 야한 짓 하는 장소지.”
현실도피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혀를 안 깨문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조교실, 야한 짓을 하기위한 장소. 그 단어만으로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예상을 하긴 했지만 새삼 제대로 인식을 하게 되니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역겨웠다. 앞으로 내가 온갖 능욕을 겪게 될 장소가 바로 이곳이고, 구체적으로는 저기 저 침대 위다. 저기서 나는 남자에게 몸을 만져지고, 더듬어지고, 욕보여지게 되겠지⋯⋯. ⋯⋯토할것 같았다.
"우읍⋯⋯."
아니, 진짜로 토할것 같았다. 속이 진짜로 안좋았다. ‘낯선 남자에 의해 욕보이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장소’. 이성이나 논리 이전에 생리적인 혐오감이 앞섰다. 입에서 신맛이 나고 목 안쪽이 움찔거렸다. 남자의 목적은 돈도 무엇도 아닌 음란한 행위, 그 의미를 이제서야 조금 실감한 기분이 들었다.
이를 악물었다. 찝찝함과 함께 신맛나는 침을 목 뒤로 넘겼다. 이정도는 견뎌내야 한다. 앞으로 더 끔찍한 일들이 많을 텐데 이정도로 무너지면 안된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코를 가득 매우는 달콤한 냄새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이 방 설명은⋯⋯ 너는 똑똑해 보이니까 뭐, 따로 필요없겠지. 대신에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지내게 될건지나 설명 해줄게. 앉아서 들을래?”
남자가 자기 바로 옆 자리를 두드리며 앉는 걸 권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
약간 유감스러워하는 말투였지만 크게 신경쓰는 기색은 없었다. 남자는 가볍게 주억이고 말을 이었다.
“대전제부터 확인을 해볼까.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네 몸을 가지고 야한 짓을 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너를 조교해서 음란하게 타락시키는 게 내 목적이지. 다만 너무 일방적인 것도 재미가 없으니까 일종의 핸디캡으로서 감금 기한은 딱 6개월, 그 동안 이 건물 내부라면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상관없어. 거기에 조교를 할 때에는 손만 사용할거고, 순결은 건드리지 않아. 음, 이 정도면 됐지?”
‘이 정도면 됐지?’ 하고 가볍게 묻는 남자의 말에 나는 ‘됐을리가 있냐’면서 속으로 한가득 욕지거리를 곱씹었다. 이렇게 정리해서 들으니 새삼 참 일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핸디캡이라고 하면 말이야 좋지만 실상은 나를 옭아매는 것들 뿐이다. 감금 기한 6개월? 건물 내부라면 자유? 이건 그냥 이 건물 안에 반년동안이나 갇혀있으라는 말을 돌려말하는 것 뿐 아닌가. 손만 사용? 결국에는 내 몸을 마음껏 만지작거리겠다는 말이면서 대체 뭘 선심쓰듯이 말하는지. 순결은 건드리지 않아? 그걸 어떻게 믿으라고. 애초에 지금 그걸 위협하고있는 게 누군데?
물론, 납치감금당한 입장으로서는 이것도 비교적 온건한 대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당장 죽거나 다치지 않는 게 어디인가. 다만 납득할 수 없을 뿐이다. 자기가 납치해놓고는 핸디캡으로서 반년 후에는 풀어주겠다니, 병주고 약주고가 아주 극에 달했다. 다른 조건들도 물론 마찬가지. 상황을 고려해보면 좋은 대우일지라도 나 개인으로서는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좀 더 세세한 이야기를 해볼까. 일단, 조교는 하루에 두 번씩 할 예정이야. 보통은 이 방에서 하겠지만 가끔 다른 곳에서 하는 경우도 있겠지.”
이야기의 진행이 참 가차없다. 나는 아직 대전제도 납득을 못했는데⋯⋯. 하지만 뭐, ⋯⋯언제는 내 사정을 고려해주기는 했나. 그냥 체념하자. 그게 그나마 나을것 같았다.
“점심 먹은 뒤 좀 지나고 오후 3시쯤에 한 번, 그리고 밤 9시에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 그리고 조교 시간은⋯⋯ 두 시간으로 제한을 둘게. 매번 언제쯤이면 끝나는지 모르는 것도 괴로울 테니까 말이야. 물론 꼭 두 시간을 안 채우더라도 적당히 때가 됐다 싶으면 멈출거야. 제한으로서는 적당할테지.”
시간제한이라. 한 번에 두 시간, 하루면 네 시간. ⋯⋯길다. 아니, 짧은 건가⋯⋯? 으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적어도 시간제한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나한테는 유리하겠지. 일단은 그것만 알고있자.
"그 외에는 자유시간. 가끔은 내가 부르거나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걸 제외하면 운동이든 공부든 원하는 대로 하면서 지내면 돼. 식사는 하루 세 번 방으로 가져다 줄거고. 설명은 이상. 질문 있어?"
"아뇨. ⋯⋯없습니다."
내 대답에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지내게 될건지를 설명해준다길래 솔직히 꽤 긴장하고있었는데 생각보다 별 내용은 없었다. 조, ⋯⋯음란한 짓은 하루 두번, 한 번에 두시간까지. 식사는 가져다주는 모양이고 비는 시간에는 어지간해선 자유. 정리하자면 이정도일까. 예상했던 것만큼 끔찍한 생활은 아닌 모양이라 약간이지만 안심했다.
"좋아. 그럼 옷을 벗어."
"⋯⋯네?"
갑작스러운 한 마디였다. 얄팍한 안도감이 한 순간에 날아가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나는 무심코 남자에게 되물었다.
"옷을 벗어. 속옷하고 그 위에 얇은 한장만 빼고 전부 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돌아온 것은 즐거운 듯 씨익 웃는 남자의 가차없는 명령뿐, 내가 원하던 대답이 전혀 아니었다.
내가 망설이자, 남자는 얼굴에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가만히 손가락을 뻗어 한쪽 벽을 가리켰다. 나도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봤다.
남자가 가리킨 곳에 있던 것은 시계였다. 평범한, 정말로 이렇다할 특색이 없는 평범한 시계. 다만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오후 세 시.”
남자가 말했다. 몸이 움찔 떨렸다.
“대망의 첫 조교 시간이야. 자아, 나는 같은 말은 딱 세 번 까지밖에 안해.”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사람의 웃는 얼굴을 보고 무섭다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옷을 벗어.”
남자의 그 짧은 한 마디가 나에게는 마치 사형선고처럼 울려퍼졌다.